이 날의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그게 아니고. 우리가 예술관으로 돌아오면서 열한살 정도 될까 하는 African-American 소녀를 만났어. 그녀는 개막식에 참석했다가, 집에 잠깐 들르고는 다시 돌아와서 아직도 행사가 진행중인지를 알고 싶어했어. 그렇다고 말해주면서, 과자도 있으니 가서 음식이랑 과자랑 집어가라구 그래줬어. 그랬더니 얘가 뭐라는 줄 알어? “과자는 아무래도 상관 없어요”, 아주 강경하게 말이야 – “난 예술 땜에 왔거든요”. 오호, 이 예술관은 졸지에 공동체 종합 예술 센타로서 몫을 단단히 하고 있었구나. 세인트 루이스의 가장 백인적인 공간 중 하나가 더 이상 그렇지 않고, 예술이 그 과정에 영향을 끼친 게야. [번역 주: 미국에서 예술은, 그것이 비싸던 대안이건 무료이건 저항 예술이던간에, 백인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럼으로 인해 유색인의 대중적인 인식도 이에 제한되고]
즐거움은 예술관 주인이 계속 얘기하면서 줄어들었지. 그의 말에 의하면, 도시 관리들은 유적이 지하 철도이건 아니건간에 싹 철거해 버리고 건물을 짓자는 대에 대해 아무 문제 의식을 못 느끼는 것 같았어. 아이러니 하게도 마약상, 포주와 창녀들을 성공적으로 다른 곳으로 보낸 다인종 연대는 그 값을 치뤄야만 했어. 자산 가치가 올라갔는데, 연대 구성원들은 집세를 내는 처지였어서, 갑자기 세가 세 배로 오르는 경험을 했지. 부동산 업자들은 이제 그 동네를 가까운 곳에 있는 분리주의 지역의 일부분인 것 처럼 소개를 했고, 재치료 매상은 폭락했구. 이 얘기를 들으며 전시회에 모인 위스콘신, 일리노이 및 미주리에서 부터 온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싼 전세를 원하는 예술가들이 가끔 “백인쪽으로 가는” 분리주의를 시작하는지에 대해 얘기를 했어. 어떤 이들은 다인종 동네 주민들에게 강도를 맞이하는 것이 콘도미니엄 개발자들을 맞이하는 것보다 나을 것인 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자산 가치를 일부러 낮춰버리면 (예를 들면 낙서 같은 전략) 그게 공동체 형성과 공존할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 그 날 밤에 우리는 비백인 공간이란 것이 가능하면서도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가에 대해서 배운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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