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다시 문을 닫고 들어왔을 때도 흰순이는 세운 등을 펴지 않고 질려 있다. 점박이만 흰순이에게 몸을 비비며 발을 들어 얼굴을 쓸어 보고 드러누웠다가는 발딱 일어나며 흰순이와 한몸이되어보려 하지만 흰순이의 몸은 외려 바들바들 떨리기까지 했다. 그는 돌아와서 떨고 있는 흰순이의 머리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얼마나 먼 밤길을 달려왔는지 등의 털이 차갑디 차갑다. 너 왜 그러니? 그는 흰순이의 목을 만지고 등을 쓸어 내리다가 섬뜩했다. 흰순이의 등에 붉은 핏방울이 점점으로 떨어져 있다. 흰털에 바싹 말라붙어 있긴 했으나 그건 분명 핏방울이었다. 그가 핏방울을 내려다보자 점박이도 피냄새를 맡았는지 수선을 그치고는 흰순이의 등털에 말라붙은 핏방울을 핥아 본다. 무엇을 본 게야? 그는 흰순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점박이는 핏방울을 핥다 말고 흰순이의 얼굴에 제 얼굴을 대며 시무룩해졌다. 그렇게 얌전히 그에게 목이며 등에 얼굴을 대보던 점박이가 갑자기 등이 휘도록 몸을 사리더니 베란다 쪽으로 홱 내달렸다. 그 날쌤 사이로 생쥐의 찌익 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찌익 찍― 거리는 소리엔 두려움이 섞여 있다. 점박이다 그렇게 홱 내달아도 흰순이는 가만있다. 그가 점박이를 따라가보니 베란다의 쥐덫에 생쥐 세 마리가 갇혀 있다. 쥐덫 바깥에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던 어미 쥐는 그와 고양이의 출현에 기겁을 한 듯 몸을 사리면서도 새끼가 갇힌 쥐덫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질려 있다. 카르릉 카르릉, 덫에 갇힌 생쥐와 어미 쥐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물어뜯고 싶은 점박이는 베란다 문을 사납게 긁어 대며 몸을 부딪혔다. 그는 베란다 문을 더울 꽉 잠그며 점박이를 안으로 몰랐다. 겁에 질린 어미 쥐가 잠시 옆 벽으로 물러섰다가는 다시 쥐덫 가까이로 다가오며 까만 두 눈으로 그를 쏘아봤다. 흰순이의 등에 떨어진 핏방울을 핥아 줄 때만 해도 다정히 느껴지던 점박이가 얼마나 맹수 같은지, 그는 순간 자신이 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고맙게 여길 지경이었다. 점박이는 숨기고 있던 발톱과 이빨을 들어내고 화다닥 문 위로 튀어 올랐다가 그의 머리고 팔딱 내려앉았다가 다시 문을 요란하게 긁어 댔다. 그 통에 그의 이마에 동여매져 있던 셔츠 팔 소매가 풀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점박이를 향해 꽥 소리를 지르면서 안으로 몰 떨어진 피묻은 셔츠 팔 소매를 주워 다시 이마에 친친 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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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몰아도 다시 베란다 창으로 향하는 점박이를 안으로 몰고 몰다가 그는 현관문 곁에 세워 둔 기타를 들고와 기타 집에서 기타를 꺼냈다. 그의 손가락이 다섯 개의 기타 줄을 퉁겼다. 그가 그녀의 청에 의해 기타를 켤 때 그녀의 무릎 위에 나란히 웅크린 채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그녀 대신 그의 기타 소리를 들던 점박이였다. 그는 덫에 갇혀 온몸이 겁으로 단단해진 생쥐들이 찌익 찍― 거리는 소리 속에서, 윗층의 탕탕거리는 망치 소리에 약이 올라 등털과 꼬리털이 뻣뻣해진 점박이의 카르릉 카르릉 소리 속에서, 피묻은 셔츠의 팔소매를 이마에 동여맨 채로 세살 때 실명한 로드리고의 아라훼스 협주곡을 튕겼다. 로드라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눈으로 어떻게 왕궁의 영화와 향수를 느낄 수 있었을까. 그래, 거기라면 고원 여기저기에 왕궁이 흩어져 있는 아란훼스라면,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아란훼스라면. 왜 달라졌을까? 처음 그녀가 그의 손가락을 봤을 때 그녀는 그의 손가락 움직임만 보고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는데, 무엇이 그 소리를 넘어 그녀로 하여금 한번만, 이라는 원을 품게 하였을까.
그의 손가락은 그의 슬픔을 타고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러나 봄이 오면, 혹은 여름이 오면, 가을이거나 겨울이 오면, 다시 또 봄이 오거나 여름이 오면, 가을이 오면, 혹은 겨울이 오면 가 볼지도 모를 스페인의 사방에 흩어져 있는 고성과 폐허, 아란훼스나 알함브라 궁전에서 있을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그의 추억을 연주했다. 거위와 생쥐와 어미 쥐와 고양이와 망치 소리를 상대로 기타를 뜯는 그의 모습은 고즈넉했으나, 그의 손은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음량을 어느 순간 넘어가고 있었다.
창에 어리는 눈처럼 그의 마음에 그녀가 어렸다. 스페인에 가면 시작만 할 것이야. 곡이 끝난다는 이미지조차 머릿속에서 지워 버릴 것이야. 시계는 열둘까지의 숫자를 두 번 돌면 하루가 지날 테지만, 스물 여덟 번 돌면 쉽사리 일이 잘 테지만, 그곳에서 나는 그것을 거스를 것이야. 내 소리로 시간을 정할 것이야. 그의 기타 소리가 깊어지자, 베란다 문 앞에서 발광을 하던 점박이가 천천히 돌아와 흰순이의 등에 제 얼굴을 묻고 땅바닥에 이따금 바르르, 떨던 흰순이가 먼저 잠들었다. 이어 점박이가 잠들었다. 쥐덫 속의 생쥐가 잠들고, 어미 쥐가 갇힌 새끼들 곁에서 잠들고, 윗층의 망치 소리가 잠들었다. 싱크대 밑의 바퀴벌레와 천정을 기어가던 거미도 납작하게 엎디어 잠들었다. 그래, 소리여, 자유로이 쾅쾅, 찌익찍, 꽉, 찌익, 가르릉, 을 넘어가라, 울타리를 넘고, 하수구를 넘고, 공기를 넘고, 행렬을 넘고, 자꾸만 멀리 가서, 그녀의 귓결, 그 어두운 속에 닿아라. 그는 기타를 기타 집에 넣어 어깨에 메고, 그녀의 편지가 끼워진 책을 처음대로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방안의 불을 끄고 쥐나 고양이가 잠이 깨지 않게 가만가만 걸어 문밖으로 나와 빈집의 문을 잠그는데 옆집에서 막 켜는 텔레비전 자정 뉴스 소리가 확 퍼져나왔다.
....오늘 전라남도 광양의 국도에서 1.5톤 트럭이 눈길에 미끄러져 가로변이 미루나무를 박고 추락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운전기사로 보이는 남자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고,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사망했습니다. 트럭에 이삿짐이 실려 있는 걸로 보아 이사중이었던 것 같은데 남자가 중상이라 아직 정확한 신원이 밝혀지질 않고 있습니다. 사고 시간은 오후 6시로 추정되고 발견된 시간은 밤 10시경입니다. 늦게 발견된 것이 여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 같습니다........
그는 진저릴 쳤다.
밤 10시라면? 관리인이 분무기를 들고 소독을 하겠다고 하던 무렵이었다. 그는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여자가 그녀라는 법이 있나? 다짐을 두는데 그이 안에서 또 다른 얼굴이 반문했다. 그녀가 아니라는 법은 또 어디 있지? 그는 경비실 앞을 지났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가 뜰의 거위 우리 앞을 지나려니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늙은 경비원이 그이 이마에 매져 있는 피묻은 셔츠 팔 소매를 올려다봤다. 경비원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상관 않고 눈을 맞으며 순하게 잠든 거위만 들여다봤다.
이상한 일이구랴, 갑자기 이리 순하게 잠들다니.
그는 눈 속에 서서 그녀가 살았던 3층을 한번 올려다봤다. 그녀가 없는 빈집의 창은 어두웠다. 빈집을 뒤로하고 고개를 떨구는 그이 내부가 빈집만큼 어두워졌다. 그가 막 스튜디오 입구를 빠져나가는데 순하게 잠든 거위 우리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늙은 경비원이 놀란 듯 외쳤다.
스페인은 언제 가시우?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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