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그쪽이 읽게 될는지요.
한번은 그쪽이 이 빈집에 올 것이기에 나도 한번은 내 마음이 그쪽에게 읽힐 기회를 만들어 봅니다. 그쪽이 선반 위에 놓여질 이 편지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만이고 만약 발견한다면 내가 그쪽 몰래 이 집을 비우고 간 것이 언젠가 한번 그쪽을 떠난 여자 때문이 결코 아님을 알아주세요. 두통 때문이에요. 그쪽에서 기타 줄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그쪽 손가락을 보고 있으면 내 귀는 그 손가락들이 내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지만 나는 그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그쪽 손가락이 가는 자리에서 새어나오는 진짜 소리를 듣고 싶은 욕망이 싹텄어요. 그 소리 속에 사랑하고 욕망하고 후회하며 살아가는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을 것만 같았어요. 나는 그날부터 두통에 시달렸어요. 그쪽의 손가락이 튕기는 한 한번만 한번만 내귀로 듣고 싶어한 그 순간부터요. 어제는 한줌 먹은 알약을 토해 냈어요. 의사는 내가 마음속으로부터 아무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된다고 했어요. 그의 진단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지요. 하지만 나날이 너무나 괴로워서 슬퍼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어요. 머리를 한쪽으로 가만히 두고 두 손으로 꼭 껴안고 있어도 두통은 거기까지 따라와서 나를 한밤중에 침대에서 떨어뜨리곤 했어요. 머리 한 군데가 피투성이로 늘어진 것같이 아팠어요. 때로 바로 앞에 앉아 있는 그쪽도 알아보지 못했답니다. 울거나 웃으면 두통은 입 모양이 만들어지는 쪽으로 왈칵 쏠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답니다. 한번만 당신이 내는 소리를 듣고 싶어한 대가가 너무 슬퍼요. 너무 아파서 이젠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어느 날 자다가 일어나 찬물에 머리를 넣고 나와 머플러로 침대와 내 머리를 묶어 두고 배 위에 양손을 포개고서 한번만 그쪽 손가락이 내는 소리를 듣고자 했던 원을 놓았어요. 그러니 머리가 편안해졌습니다. 안녕, 내 사랑. 차라리 이 빈집에 들어와 이 편지를 읽지 말길. 내가 집 정리를 하는 줄 알면서도 그쪽의 또 다른 마음이 모른 척하였듯 차라리 내가 두통 때문에 그쪽을 버리고 가는 걸 영원히 모르길. 그러면 뒷날 그쪽 마음에 내가 가엾을는지.
"이젠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부분의 '사람'이란 글씨에 핏물이 튀어 '람'자가 일그러져서는 '랑'으로도 읽혔다. 그가 핏물이 일그러뜨려놓은 부분을 이젠 사랑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라고 되읽고 있는 틈 망치의 쾅쾅 소리 사이로 고양이가 카르릉, 소리를 내며 뭐에 놀란 듯 팔짝 그의 어깨 위에 뛰어올랐다. 고양이를 놀라게 한 건 악― 비명을 지르며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소리였다. 그는 그이 어깨 위에 내려앉은 고양이와 함께 창가로 가서 바깥을 내다봤다.
광장이랄 것도 없는 스튜디오 앞 작은 뜰로 머리가 헤쳐지고 긴치마를 입은 여자가 눈이 쏟아지고 있는 뜰로 튀어나왔다. 차가운 눈바람이 여자의 치마를 위로 확 제치니 그 바람에 뜰에 내려앉아 있던 눈이 쿨렁거렸다. 수은등 불빛이 눈빛 위에 창백하게 쏟아지고 있다. 그 불빛에 비치는 살려줘요, 외치며 죽어라 도망치는 여자의 발은 눈 위에 맨발이었다. 온몸이 두려움에 질려 있는 여자의 맨발은 눈 위에 닿을 새도 없이 화다닥 내달렸다. 잠잠해져 있던 거위 우리 속에서 거위들이 동시에 후다닥거리며 꽉― 소리를 내질렀다.
아이구 이 사람들이 거위가 놀라잖우.
늙은 경비원이 뛰어나와 거위 우리로 가는데, 맨발의 여자가 뜰을 막 돌아서는데.
거기 섰지 못해.
사나운 소리와 함께 여자가 튀어나온 자리에서 시커먼 남자가 튀어나왔다. 거위들이 다시 후다닥거리며 꽉― 질겁했다.
이 사람들아.
늙은 경비원은 마치 남자가 여자를 향해서가 아니라 거위 우리를 향해 뛰어오기라도 하는 양 눈발 속에서 거위 우리를 가로막고 섰다. 거위 우리를 늙은 몸으로 막고 서 있는 경비원과 사납게 여자를 뒤쫓아가는 성난 남자를 쳐다보는 그의 머리가 띵했다. 저게 뭔가. 눈 속에서 여자를 뒤쫓아가는 남자의 손에서 뭔가 섬뜩하게 번득였다. 처음에는 눈빛인가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가 팔을 저으며 내달릴 때마다 휘둘러지며 푸른빛을 냈다. 설마, 그는 한 걸음 물러섰다. 그것이 식칼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그는 그만 아득해졌다. 거위 우리를 막고 서 있던 늙은 경비원도 남자의 손에 들려진 것이 식칼인 줄을 알았던지 그 자리에 철버덕 주저앉아 버렸다. 그는 놀란 가슴으로, 그의 어깨 위의 고양이는 새파랗게 광채를 내며, 식칼이 어둠 속에서 휘둘러 질 때마다 내는 칼빛을 창가에 서서 쳐다보았다.
저 남자는 저 여자를 붙잡으면 정말로 저 식칼을 내꽂을 것인가? 얼마 후에 그도 거위 우리 앞의 늙은 경비원처럼 창틀 밑에 철버덕 주저앉아 버렸다. 그 통에 그때껏 그의 어깨 위에 파란 눈빛을 내며 앉아 있던 고양이가 가르릉, 거리며 바닥으로 뛰어 내렸다. 처음 보는 싸움 구경이 아니다. 저들은 자주 저렇게 싸웠다. 윗집도 아니고 아랫집도 아니고 옆동인데도 그들의 싸우는 소리는 요란하게 벽을 뚫고 들려 왔다. 그러다가 가끔 저렇게 살려줘― 외마디 소 ¦ 지르며 여자가 아파트 뜰로 튀어나왔고, 뒤이어 남자가 거기 섰지 못해, 를 외치며 따라나왔다. 그녀는 창에 서서 그들을 구경하다가 늘 피식 웃곤 했다. 그가 왜 웃는가? 물으면 그녀는 그럼 울까요? 했다. 빈손으로가 아니라 식칼을 들고 여자를 쫓아가는 남자를 보고도 그녀는 웃을까? 싸움 때마다
살려줘― 하는 여자의 외마디를 듣지 못한다 해도 저 남자의 손에 들려진 저 식칼은 보일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웃을까? 웃는 그녀를 보고 그가 여전히 왜 웃는가 물을 수 있을까? 그때도 그녀는 그럼 울까요? 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괜찮아. 괜찮다. 주저앉혀진 몸을 일으켜 세워 다시 창밖을 내다보니 남자가 휘두른 식칼에 놀라 거위 우리 앞에 폭삭 무너졌던 늙은 경비원이 바닥에서 겨우 몸을 일으켜서는 거위들을 달래고 있다. 도망치는 여자와 식칼을 들고 쫓아가는 남자와 거위를 달래고 있는 늙은 경비원과는 상관없이 눈은 하염없이 내렸다. 바람이 불 때면 순간 순간 눈은 그가 서 있는 창으로 달려와 판화처럼 어렸다. 그는 주저앉아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그녀의 편지가 얌전히 끼워져 있던 단편소설 책 º 저만치 내팽개쳐져 있다. 그는 편지를 처음과 같이 책에 끼워 두었다. 그가 그러고 있는 동안 위층의 쾅쾅 망치 두들기는 소리, 스튜디오 뜰의 거위가 꽉― 거리는 소리, 어디선가 생쥐가 찌익― 하며 몸을 숨기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빈방에 홀로 앉아 있는 그의 귀에 망치, 거위, 생쥐 소리들이 채워져 그는 감각을 잃어 가며 앉아 있다.
그가 편지를 다시 끼워 넣은 책갈피를 막 닫을 때였다. 그의 옆에 등을 세운 채 가만히 앉아 있던 고양이가 현관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 움직임이 얼마나 날새던지 휙― 바람이 일었다. 점박이는 현관문 밑을 발톱으로 마구 긁어 댔다. 그러다간 그를 돌아다봤다. 점박이 눈의 새파란 광채가 더욱 파래져 있었다. 고양이가 이상해 그는 몸을 일으켰다. 분명 바깥에서 긁는 소리다. 무슨 소리지? 망치, 거위, 생쥐 소리들 사이로 문 긁는 소리는 신선하게 끼어들었다.
누구요?
그의 목소리가 새 나가자 조용하다. 그러다가 다시 문을 긁기 시작한다. 무얼까? 그는 조심스럽게 보조키를 따로 현관문을 밀었다. 문밖에 희디흰 고양이 한 마리가 긴장한 채 앉아 있다. 그녀가 안 트럭에 올랐던 고양이 흰순이다. 안의 점박이는 바깥의 흰순이를 보자마자 야용, 몸을 완전히 말았다가 폈다. 점박이는 흰순이에게 화다닥 달라붙어 나뒹구는데 흰순이는 무엇에 질린 둣 등을 세운 채 꼼짝 않고 있다. 그는 눈이 휘둥그래 진 채 두 고양이들을 내려다봤다. 두 고양이들을 밀어서 안으로 들여놓고 그는 어두운 계단을 쳐다봤다. 누군가 돌아온 고양이 뒤에 서 있을 것 같았는데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둡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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